꿈에 그리던 독립을 하게 된 것은 올 봄이였다. 부모님과의 신경전으로 매일 방문을 부서지도록 닫지않아도 되고, 몇시에 일어나건, 몇시에 집에 들어가건 이십대 후반을 달리는 딸들에게 과한 관심과 애정을 보이는 부모님으로부터 적당한 거리를 두게 된 것이다.역마살이라도 끼인 마냥 일년에 두어달은 여행을 다녀야 직성이 풀리는 언니는 워킹 홀리데이를 비롯해 세계각국을 쏘다니며 집을 비웠고, 하고 싶은게 너무 많아 이것저것 들쑤시고 다니는 나는 학창시절부터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서울로 일을 하러 가겠다며 집을 비우는 시간이 잦았다. 유일하게 집에 붙어있던 막내아들은 작년 여름, 나라의 부름을 받고 강원도로 가게 된 탓에 내가 성인이 되고 난 뒤로는 온 가족이 집에 모여 저녁을 먹어 본 기억이 까마득
나는 모험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잘 모르는것, 잘 할 자신없는것에 대해 두려움이 많은 탓이였다. 학창시절 체육시간에는 제일 먼저 기권을 선언하고 게임을 구경했고 수능때 수리영역은 아예 응시조차 하지 않았다. 운전은 택시기사님이 하는 것, 음식은 식당에서 사먹는것, 한라산은 창문에서 바라볼때 가장 예쁜거라 믿었다. 애교가 없다고 말하는 이성에게는 눈물을 머금고 이별을 고했고, 길치인 내가 발목까지 눈이 내린 시애틀에서 길을 잃었을때는 무작정 스타벅스 안으로 들어가 엉엉울며 주문을 한 탓에 직원의 위로를 받은적도 있다. 이렇게 겁이 많은 나의 관심사는 아이러니하게도 모험과 도전을 필요로 하는 것들이였다.어렸을때부터 꿈꾸던 월간지 기자를 하겠노라며 대학에 진학했고 소위 말하는 큰
-꿈은 없고 직업만 있는 아이들 장래희망- 미래에 자신이 바라는 장래, 살아가는 방식, 혹은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의미하는 말이다. 흔히 초등학교에서는 하룻밤 사이에도 꿈이 바뀌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장래희망을 물어보곤 한다. 15년전 그러니까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때는 내 친구들의 꿈은 보통 선생님, 디자이너, 가수, 과학자, 의사 등 다양했다. 심지어 치킨집사장, 슈퍼주인처럼 자유로운 꿈을 꾸는 친구들과 엄마가 장래희망이라 대답하는 친구들도 종종 볼 수 있었다. 요즘 초등학교 장래희망 칸에는 어떤 꿈이 들어있을까? 사촌이나 조카, 지인의 자녀들을 통해서 "너는 꿈이 뭐니? 요즘 니 친구들은 나중에 커서 하고 싶은게 뭐야?"라고 물었더니 "은행에서 일하면 편하